북한 방문기 2 - 묘향산, 보현사, 평양스케치
북한 방문기 2008-07-14 20:58:48
윤나라의 북한방문기 2 - 1. 묘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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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문 둘째날, 140명의 일행은 '민족의 명산' 묘향산을 향했다.묘향산은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평양 시내를 벗어나자,어느덧 익숙해진 '시골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있자니, 우리의 70년대 시골 고향을 다시 찾아가는 느낌이 들면서도 6월 햇살에 반사되는 그 눈부신 푸르름 때문이었는지 왠지 모르게 풍족해 보이고 마냥 평화로워 보였다. 넓고 푸르른 논밭, 쑥쑥 잘 자란 키다리 가로수들, 그 모든 풍경들이 뭔가 윤택한 느낌마저 들게 해주었다.

그러나 겉모습의 풍요로움과는 상반되게, 가는 길목 중간중간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버스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북녘 동포들의 얼굴과 행색에서는 궁핍과 궁기가 역력해보였다. 가슴이 아파왔다.

이번 북한 방문은 말 그대로 '방문'이었다.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처럼 오지였지만 드나듦과 모든 시스템이 자유로웠던 곳에 견주어 북한은 같은 땅의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는 다른 체제 때문에 그 쪽에서 길잡이 하여 보여주는 것과 들려주는 것만 보고, 듣고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나의 잣대를 기준으로 바라본 것일지도 모른다.북쪽에서 '6.15 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는 중요한 행사를 앞에 두고 140명이나 되는 우리쪽 민간인을, 그것도 중국 등 3국 경유가 아닌 직항으로 가는 특별전세기까지 받아들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니까...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우리에게 그들 나름대로의 많은 것들을 열어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니까...

방문 이틀째가 되고 나니, 사진을 찍는 것이 첫날보다도 조금 더 어려워졌다.사실 첫날 도착하자마자 안내하는 북측 관계자들을 통해 사진을 마구 찍지 말아달라는 주의를 듣긴 했지만, 150만 아침편지 가족들에게 내가 보고 접한 실상 그대로를 가감없이올바르게 전해주고 싶다는 욕심과 '사명감' 때문에 한시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었다.

하지만 평양을 벗어나는 일정 때문이었는지, 함께 동행하여 안내하는 북쪽 관계자들이 이틀째부터는 "이번 방문에서 로상(노상)에서의 촬영은 호상간 합의 사항에 없었습네다." 라며 완곡하지만 강경한 어조로 사진 찍는 것에 대해 '불허'를 통보해왔다.사실 평양 시내 촬영도 눈치를 살펴가며 어렵게 시도해 담아냈는데 평양 바깥 풍경은 더더욱 곤란해져 버렸다. 순간 난감함을 느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생각,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 이런 것들을 생각하여 그나마 겨우 몰래 찍은 시골 풍경 두 장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드디어 묘향산에 다다랐다. 들어가는 길목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가슴이 탁 트여왔다. 푸른 나무들의 울창함이 평양에서의 딱딱한 건물들, 빨간 글씨들 때문에 조금은 경직되어 있던 마음을 한결 풀어주는 듯했다.

더욱 더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어딜 가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노래시키기를 즐기시는 기아대책 정정섭회장님의 재미있는 습관 덕분에 많은 북한 여성들의 노래를 즉석에서 들어볼 기회가 많았는데 하나같이 얼굴도 예쁘지만 노래도 잘하고 북한 사투리를 나긋나긋하게 구사해 여자인 나도 북쪽 여성들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버렸다.

묘향산에는 뛰어난 산세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제친선 관람관'이었다. 이 국제친선 관람관이라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 두 부자에게 전 세계에서 보내온 선물들이 서울 여의도의 63빌딩 면적만큼이나 넓은 공간에 전시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따로 떨어져 세워진 두 개의 건물에는 700여 개의 방이 있고 방마다 진귀한 선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 선물 하나를 1분씩만 감상한다 쳐도 1년6개월이 걸린다는 안내원의 소개에 돌아보기도 전에 기가 질려버릴 정도였다.

별천지처럼 꾸며진 커다란 방에 하나하나 놓여있는 진기한 선물들을 보고 있자니 묘향산을 들어오면서 느꼈던 신선함과 탁 트였던 마음이 다시 무언가 조금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대단한 것'들을 많이 모아 놓았는데, 그 대단함이 결국에는 누군가를 '위대하게'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과 너무 다른 공기를 맡으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물론 다른 공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조심하고 깊이 이해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이를테면, 수년전 우리에게 잠시 웃음거리로 회자되었던 '묘향산 해수욕'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이 묘향산에 거의 이르렀을 때묘향산을 끼고 흐르는 '청천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뇌리에 번쩍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바로 그 '묘향산 해수욕' 에피소드였다. 당시 평양을 방문했던 어느 TV 기자가 북한의 어느 여성에게 "여름 해수욕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묘향산으로 해수욕을 간다"고 대답해, 그들의 '무지'를 웃음으로 받아넘겼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그래서, 안내자 한 분에게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꺼냈다.그랬더니 북한에서는 '해수욕'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그 당시 북한 사람들은 거의가 그 단어를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순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기자가 '해수욕을 어디로 가냐'고 물었을 때, 그 대답자는 '해수욕'이란단어에 대해 어림짐작을 했거나 '해수욕이 무엇입니까'하고 묻고 '물놀이'라 대답했을지 모를기자에게 스스럼없이 '묘향산'으로 간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묘향산은 분명 '산'이지만 '물놀이'를 하기에도 충분한 곳이 틀림없음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분단.분단의 비극은 그렇게 한 민족인 우리들의 이념이나 생활 방식, 언어를 다르게 만들었고, 또 더 깊게는 고향을 잃고 가족과 생이별하는 처절한 아픔과 한을 심어 놓았다.

묘향산에 가는 버스에 동승한 일행 중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묘향산으로 향하는 2시간 동안 우리 버스 안에서는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차례가 되신 한 분이 나오셨는데 그 분은, 우리 5조의 조장을 맡은 기아대책의 안향선 본부장의 아버님 안승룡님(78세)이셨다.

안승룡님께서는 만감이 어린 표정으로 "지금 이 버스가 내 나이 15살에 떠난 고향땅 안주를 막 지나고 있다"며 목이 잠기셨다.버스 안이 잠시 숙연해졌다.

묘향산을 향하는 내내 그 분의 표정이 무언가 비장함을 가득 담고 있는 듯 느껴졌던게 바로그런 이유에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안본부장께서 '55년이 지났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는 모습과 거의 변함이 없어 고향인 안주 땅임을 바로 알아보신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막 쏟아지려고 할 때 당신 소개 차례가 돌아와버렸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많은 사람들 앞이라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고 그 분의 가슴 안에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나 될까.

묘향산에서 평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버스는 공교롭게도 '안주' 땅 도로상에 잠시 멈추었다.용변 등 잠시의 휴식을 위한 것이었지만 안승룡님에게는 이 기묘한 우연의 정차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을 1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이나마 다시 밟게 해준 '슬프고도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분의 가슴에 고인 아픔과 한, 슬픔의 눈물이 얼마일지 나로서는 정말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승룡님은 분명 '행복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분 한 사람의 짧았지만 '귀한 행복'이 계속 이어져 둘, 셋, 넷, 열, 백, 천.. 나중엔 7천만 모든 민족의 행복으로 번지고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글 / 아침지기 윤나라 실장사진 / 윤나라 실장, 최동훈 팀장
묘향산 보현사 평양스케치
묘향산으로 가는 길.평양을 조금 벗어나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멀리 보이는 또 다른 마을의 모습. 평양-향산간 고속도로에는 중간에 휴게소가 없다. 잠시 휴식을 위해 멈춰 섰다. 정차한 곳은 평안북도 안주 지역이다.향산(묘향산)까지 37km 남은 지점.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거의 없어 길 위에서 사진을 찍어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향산 37km 표지판 뒤쪽엔 평양 108km라고 적혀있다.열심히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아봤다.묘향산 입구 청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물은 그냥 들이켜도 될 정도로 엄청나게 맑았다. 여름철이 되면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긴다고 한다.묘향산 기념품 판매점에 걸려 있는 묘향산 관광 안내도.묘향산의 아름다운 산세. 정상인 비로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비로봉 등반을 위해서는 2박 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여 이번 방문에는 이뤄지지 않았다.울창한 나무숲.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숲의 맑은 정기가 그대로 전해지는듯 했다. 묘향산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친선전람관.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각국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 24만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김일성 전람관과 김정일 전람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사진은 김일성 전람관이다.전람관 출입문. 구리로 만들어진 이 문의 한쪽 무게만도 4톤이라고 하니 건물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함께 동행한 기아대책 김승연 목사가 대표로 문을 열어보이고 있다.김정일 전람관. 내부를 둘러본 후 2층 망루에서 묘향산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손을 맞잡고 함께 노래하는 남남북녀. 남측 방북단 5조를 맡아 국제친선전람관을 열심히 설명한 북측안내원에게 기아대책 정정섭 회장이 노래를 부탁했다. 환하게 웃으면서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반갑습니다'이다.향산호텔. 삼각형 모양으로 지어져 있는 매우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향산호텔에서의 점심 식사. 북측 종업원이 식사 전 물수건을 나누어 주고 있다.묘향산 돌버섯. 묘향산의 특산물인 돌버섯으로 만든 요리이다.새콤하면서 쫄깃한 맛이 전채요리로 먹기에 좋았다.꿈에도 그리던 안주 고향땅을 다시 보게 된 안승룡님(가운데).왼쪽은 안승룡님의 따님인 기아대책 안향선 본부장.
묘향산 보현사 평양스케치
묘향산 입구. 향산천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보현사' 의 모습. 수려하고도 장엄한 묘향산의 풍광과 매우 잘 어우러진다.보현사 입구에서 분홍색 한복을 입은 북측 안내원이 설명을 하고 있다.'묘향산문화유적' 설명을 듣고 있는 기아대책 사람들. 이날 기아대책 사람들은 모두 별도의 티셔츠를 입었다.나무에 씌여 있는 '조국의 나무 한그루도 귀중히 여기자!' 라는 글귀가 이채롭다. 벼락을 맞아 반동이가 된 나무이지만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해탈문을 지나고 있는 방북단.해탈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온다.보현사 대웅전의 모습.북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보현사 8각 13층 석탑.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탑이다. 추녀마다 풍경, 북쪽말로 '바람방울'이 104개나 달려있다.'우리민족서로돕기' 대표중의 한 사람으로 방북한 송월주 스님이보현사를 방문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보현사비. 북한 '국보유적 제 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팔만대장경보존고. 1984년에 세워졌으며, 고려 중순 팔만대장경 목판으로 처음 인쇄한 불경 수 만 권이 보관되어 있다.산뽕나무. 절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였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모습은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묘향산 산뽕나무 비석. 400년 된 나무로 보호를 받고 있다.열심히 설명하는 북측 안내원 리남옥님. 보현사에서만 20년 넘게 안내를 해오고 있다고 했다. 서까래를 덧이어 놓은 건축 양식을 가리키며 부연(婦椽) 이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리남옥님이 백리향을 소개하고는 풀잎 하나를 따고 있다.따 낸 백리향 이파리를 고도원 이사장의 코에 대주고 있는 리남옥님.백리향등 묘향산에서 자라는 희귀 식물들을 안내하는 표지판.한반도의 모양을 본 따 다듬어진 나무를 사이에 두고 '남남북녀'가 손을 잡고 웃고 있다.우리의 소원은 통일. 나무 그늘 아래 모여 남북이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청껏 부르고 있다.녹음이 우거진 6월, 보현사의 뜰에도 초록이 가득했다.
묘향산 보현사 평양스케치
버스를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여학생들. 운전석 거울에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윤나라실장의 모습도 보인다.평양의 거리 풍경. 왼쪽으로 전기로 가는 버스와 트럭, 오토바이 등이 눈에 띈다.화단을 정리하고 있는 학생들. 6.15 행사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거리 곳곳에서 길을 단장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붉은 선전판의 강렬한 문구와 화단을 정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김일성광장에서 집단체조를 연습하고 있는 학생들. 멀리 보이는 높은 탑이 '주체탑'이다.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평양역. 왼쪽 아래 흰색 제복의 여성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평양의 '개선문'. 한쪽에는 1925, 다른 한쪽에는 1945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이는 김일성 전주석의 독립운동을 기념한 것이라 한다. 개선문 바로 옆에 있는 평양지하철 '개선역'. 바로 앞에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고,길가 정류장에는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고려호텔'의 영문 현판.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특급 호텔'이다.호텔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로동신문'.고려호텔내의 '식사칸'.'식사칸' 식탁에 앉아 '평양 불고기'로 저녁식사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평양 특유의 김치. 맛이 일품이었다.'평양 불고기'가 맛있게 구워지고 있다.'들쭉음료'라는 이름의 과일 주스. 그 뒤로 보이는 병은 '룡성사이다'이고 이외에도 '배단물' 이라 불리는 배즙 음료가 북한에서 자주 마시는 음료수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식당 여종업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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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진석 2008-07-25 21:15:56

    같이 가신 어르신들의 건강하신 모습 보니 감사 할뿐입니다

  2. 헐랭이 2008-09-04 12:52:52

    뷰티풀!
    우리의 강산!
    언제 보려나!

  3. 박혜연 2009-01-17 00:37:20

    진짜 북녀들의 모습 순박하고 곱네요? 나도 평양에 가보고싶어요~ ㅠㅠ

  4. 박혜연 2010-02-26 22:38:27

    북한은 건강음식 먹기 가장 좋은나라인것 같습니다! 우리처럼 니끼한 서양식요리를 파는 식당이 많지 않으니까요!

  5. 노희춘 2011-04-26 17:32:28

    3명모두 아주 예쁘고 건강하고 신실한 여성으로 보이네요....

  6. 이중철 2012-04-01 22:28:52

    빨리 통일되어 북한의 아름다운 모습들 자유롭게 보고 함께 나누고 살았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