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문기 1 - 인천에서 순안공항, 평양거리풍경, 만경대
북한 방문기 2008-07-14 20:58:48
윤나라의 북한방문기 1 - 1.인천공항에서 순항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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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분.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지리적으로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길이 막혀있었던 그동안 마음의 거리는 너무 멀고도 멀었다. 내가 이렇게 쉽고 빠르게 건너가 볼 수 있으리라고는 이전까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에게 있어 북한은 피안의 지대였다.반공 교육 세대이기 때문에 '북한' 하면 왠지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여겨왔고, 아직도 내 뇌리에는 초등학교 때 보았던 영화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 외치며죽어가던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란 노래와 함께 오버랩 되어 맴돌곤 했다.

사실 북한 방문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병원 수술대에 올랐던 불과 한 달 여전까지만 해도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물론 최근 들어 '북한과의 인연'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두 달 전 아침편지에서 기아대책기구와 함께 '북한 라진 된장'을 판매하면서 북한과 연관된 일이조금씩 시작되었고, 그런 연유로 고도원 이사장님도 그전부터 가지고 있던 북한 방문에 대한 희망을더 자주 얘기하곤 하셨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북한 방문의 행운을 거머쥐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금강산 여행 코스도 아니고, 중국 등 다른 곳을 경유해서 평양을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천공항에서 평양으로 직행하는 특별 전세기를 타고 불과 55분의비행 끝에 방문하게 되니, '감개무량'이라는 진부한 표현 말고는 달리 더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2005년 6월 7일 오후 3시15분, 드디어 비행기가 평양에 도착했다.이번 방문은, 이미 일부 언론에 보도된 대로, '기아대책기구'와 '우리민족 서로돕기모임'이공동 지원하여 세운 '정성 수액공장' 준공식에 참가하기 위한 특별 방문이었다. '수액 공장'이란한 마디로 병원 링거용으로 쓰는 '포도당 주사액 공장'을 생각하면 된다. 6.15 공동 선언 5주년에즈음하여 가까스로 다시 재개된 남북 대화 및 교류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임은 더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는 하나, 140명의 방문자 전원이 오로지 민간인으로 구성되어 이렇게 특별전세기를 통해 평양으로 직접 날아간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나를 포함한 방문자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이 드신 분, 그것도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의 경우는 더욱 절절해 보였다. 비행기내 좌석에 앉아계신 어른 중 몇 분은 남몰래 눈물을 훔치시는 것 같았다.

착륙후 비행기에서 내릴 때 트랩 위쪽까지 올라온 북한 관계자 두 사람이우리 일행을 한 사람 한 사람 명단과 대조하면서 내리게 했고, 내 이름과 얼굴을 확인시킨 후드디어, 평양 땅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평양의 햇볕은 뜨거웠고, 공기는 맑았다.평양 땅을 밟은 방문 팀들의 얼굴 하나하나에서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감회가 엿보였다. 반가움, 신기함, 놀라움, 호기심, 긴장감 등등의 눈빛이 햇볕에 부딪쳐 번뜩이는 듯 했다. 나에게도 역시 그런 비슷한 감회가 교차되어 다가왔다.

트랩을 내려 너른 비행장을 둘러보니 다른 비행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고려항공'이란 이름의 북쪽 비행기와 '대한항공'이라는 남쪽 비행기가 나란히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무언가가 가슴 한쪽을 조금 싸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공항 건물 중앙 위쪽에는 TV를 통해서도 종종 보았던,'평양'이라는 빨간 글씨와 함께, 10여 년 전에 사망한 김일성주석의 초상화가거대하게 걸려 있었다.

많은 방문단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조별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고,나와 최동훈 팀장, 고도원 이사장님은 5조에 편성되어 정해진 버스에 짐과 함께 몸을 실었다.버스가 공항을 출발하면서 북한쪽 '안내원'들이 인사를 하였다. '민족화해협의회' 소속 간부한 분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렇게 평양을 방문해주신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네다."우리 방문단 일행도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북한 안내자의 말이 이어졌다."긴장하지 마시라요. 고저 내 집에 왔다, 내 고향집에 왔다,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3박4일을 보내고 가시라요." 다시 박수가 터지고 웃음이 뒤따랐다.'긴장하지 마시라'는 안내자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버스 안에 앉아있던, 자신들은 긴장한 줄 모르고 긴장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쯤은 확실하게 녹여주었다.

조금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내 눈에 평양 근교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곳의 모습은 시골에서자란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기에 충분했다. 안내자의 말처럼 실제로 '고향에 왔다'는느낌이 들었다. 물론 북한에서 만난 시골 풍경은 조금 남달랐다. 그러니까 굳이 표현하자면현재 남쪽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시골을 방문한 느낌이라기보다 내가 살았던,그러나 이제는 거의 사라진, 어린 시절의 시골 고향집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타임머신을 타고 7,80년대로 되돌아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설명이 좀 될지 모르겠다.

북한에 도착해 우리가 제일 처음 들른 곳은 '만경대'였다. '만경대'는 이름 그대로 '만 가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고, '김일성장군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평양 시내를 어느 정도 벗어나 대동강을 만났고, 대동강 가를 따라 제법 서쪽으로가다가 빠져나와 '만경대'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는 검정치마와 하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성특유의 복장을 한 여자 안내원이 "반갑습네다" 는 인사말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김일성 생가'에서도 확연히 느꼈지만 북한 사람들의 마음과 그 마음이 발현되는 행동에한결같이 하나의 거대한 '중심'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바로 김일성 전 주석에 대한 경외심과 충성심이다. 생가를 소개하는 여성 안내자들이설명 중간 중간 울먹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소개하는 모습에서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그런 존재였기에 '그'가 태어난 이곳 생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최고의 순례지이자 성지와 다름없었다.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아침지기 최동훈 팀장이 농담으로 들려준 얘기가 생각났다."김일성 주석이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소문이 있다"고...무슨 소리냐며호기심 어린 눈으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는 "그 '어딘가'는 바로 '인민들의 가슴 속'이다"고 말해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했다.우리 한국에서는 하나의 농담에 그쳤던 그 얘기가 북한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하나의 굳은 신앙이자 현실이었음을 방문 기간 내내 절감하게 되었다.

이념적, 사상적, 종교적, 민족적, 문화적인 것들에 대한 일체의 속박 없이, 더구나 5공화국 이후 자유에 대한 억압이나 삶의 방향에 대한 강요를 단 한번도받아본 적 없이 살아온 나에게, 북한은 존재 모습 그 자체로 '나'를 얼마간 혼돈케 했다.

북한은 분명 변하고 있었다. 이번 방문자 중 몇 차례 북한 방문의 경험이 있는 분들이 한결같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해주셨고, 실제로 안내자들의 언행, 식당 종업원들의 서비스, 평양 시내의 면모 등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밝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의 첫 방문으로 그 변화의 양상을 잘 모르는 '나'에게 북한이 많이달라졌다는 말은 그리 실감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북한 사회의 깊숙한 곳에서 오래도록흐르고 있는 '중심'과 '본질'에 있어서는 더더욱...그것이 '나'를 혼돈케 했던 것이다.

글 / 아침지기 윤나라 실장사진 / 윤나라 실장, 최동훈 팀장
인천공항에서 순안공항 평양거리풍경 만경대
평양으로 떠납니다. 인천공항 로비에서 '기아대책'과 '우리민족서로돕기','아침편지 문화재단'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공항 탑승구 전광판에 'KE815 평양' 이란 안내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평양행 항공표. 출발지 서울(SEOUL), 도착지 평양(PYONG YANG)이 우측에 차례로 표기되어 있다.'방문증명서'. 북한 방문을 위해서는 통일부에서 허가하는 '방문증명서'를 받아야 한다.'방문증명서' 내부.비행을 시작한지 채 50분도 안되어 평양 상공으로 들어섰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자 눈에 평양 인근의 산과 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밖을 내려다 보는 고도원 이사장의 표정에 만감의 감회가 서려 있다. 평양 인근 마을의 풍경.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길 위에 드문드문 사람이 보이고, 큰 운동장이 있는 학교의 모습도 보인다.한가한 길 위로 멀리 세 대의 버스가 차례로 달리고 있다.북녘 들판은 아직 막바지 모내기가 한창이다. 멀리 모내기하고 있는 동포들이 보인다. 반듯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지어진 집의 모습이 이채롭다.인천에서 평양까지 비행 시간은 불과 55분이었다. 오후 2시 15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3시 10분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는 바람에 비행기에서 내리는데에만 30분 이상이 걸렸다.순안공항. 김일성 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날 평양의 날씨는 매우 맑았으며 6월의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북한 항공사인 '고려항공'의 비행기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남과 북의 비행기. '대한항공'과 '고려항공' 비행기가 평양 공항에 함께 서 있는 것도 역사적인 광경이다. 기념 촬영. 공항 청사를 배경으로 방북단 140명 전원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순안공항을 배경으로 아침지기들도 한 컷. 가운데가 고도원 이사장이고 좌우로 최동훈 팀장과 윤나라 실장.
인천공항에서 순안공항 평양거리풍경 만경대
순안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처음 마주친 풍경.평양시내로 들어가는 길. '3대혁명만세' 라는 문구가 세워져 있고, 몇몇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무리지어 가는 군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평양 북쪽 외곽에 위치한 아파트 풍경. 금수산 기념궁전. 평양 대성구역에 위치한 국가 최고지도자의 관저로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주석궁, 금수산 의사당으로 불렸다. 총부지 면적이 350만㎡에 이른다. 북한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의 정문.김일성종합대학 내에 세워져 있는 건물.김일성종합대학 내의 또 다른 건물.왠만한 건물 위에는 이와 같이 붉은 글씨의 구호가 쓰여있다.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화단 등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동승한 북쪽 안내자에게 "6.15 5주년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냐"고 질문하자"계획성을 가지고 하는 일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양산을 쓰고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거리 한 귀퉁이 공터에는 아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연습하고 있다. '비파 리발' 이라 간판이 붙은 이발소의 모습도 보인다.거리 곳곳에서 줄맞춰 서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강렬한 문구의 그림판과 붉은색 깃발이 눈에 확 들어온다.평양 지하철 '전우역' 앞 사거리 풍경.'천리마거리 리발관', '녀자양복점' 등의 상점 간판이 보인다.'봉남 미용', '꽃 금붕어' 등의 간판을 단 상점. 간판 옆에서 건물 단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대동문 영화관.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는 '사랑의 바다'였다.'백두의 혁명정신' 이라 적힌 대형 간판과 거리에서 쉬고 있는 노동자들.'휘파람' 광고판. 평양시내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북한산 '평화 자동차'의 광고물이다.전차. 평양의 중요한 교통 수단의 하나이다.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 길 건너편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인지악주단이 계속해서 음악을 연주해주고 있었다.평양 지하철 '혁신역' 앞 사거리.꽤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혁신역' 앞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이용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평양의 보통문. 서울에 남대문과 동대문이 있듯이 평양에는 '대동문'과 '보통문'이 있다.이 두 문의 이름은 모두 옆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보통문의 자태.파란 하늘로 솟아오른 듯한 보통문의 앞뒤를 담쟁이 덩굴이 휘감고 있다.
평양거리풍경
인천공항에서 순안공항 평양거리풍경 만경대
대동강. 평양시내에서 만경대로 가려면 대동강변을 지나게 된다. '대동교', '순안', '룡성'이라 적혀 있는 교통 표지판이 보인다.대동강의 모습.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이 '동평양'이다.대동강 '뱃사공'. 노를 저어 배를 모는 주민들의 모습이 옛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강건너 보이는 '쑥섬'. 1948년에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등이 참석한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 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통일전선탑을 세워 놓았는데 당시참가했던 단체와 개인들의 이름을 모두 새겨놓았다고 한다. 대동강변에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북녘 주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만경대 김일성주석 생가 앞.아름드리 나무가 심어져 있다.남측에서 온 손님을 '열렬히 환영하며' 맞아준 북측 안내원. 만경대에 대해 감정을 깊이 담은 목소리로 애절하게 설명해 주었다.김주석 생가 앞에 세워져 있는 붉은 글씨의 비석.생가의 입구 모습.열성을 다해 설명하는 안내원의 표정이 인상적이다.생가의 큰 방 모습. 장롱과 책상이 놓여 있다. 벽에는 어린 시절의 김일성 전 주석과 부모 사진이 좌우에 걸려 있다. 생가 한 켠에 전시되어 있는, 그 당시 사용했다고 하는 농기구들. 북에서는 김일성주석의 흔적이 남은 것은 멍석이든 무엇이든 매우 중요한 유품이 된다. 커다란 항아리와 키 등이 유물로 전시되어 있다.함께 전시되어 있는 물동이. '만경대고향집' 비석 앞에서 북측 안내원과 함께 기념 사진.생가 바로 옆에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우물이 있다. 더운 날씨를 식혀 주는 아주 시원한 물맛이었다. 초록색 컵을 들고 있는 사람은 방송인 정재환님.만경대의 정상 지점에 '만경대'라 현판이 붙은 정자가 있다.만경대라는 이름은 '만가지 경치가 모이는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만경대 위에서 동평양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만경대' 현판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기념품 상점에서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여점원. 물건을 살 때에는 유로나 달러로 구입할 수 있다.만경봉을 내려 오고 있는 방북단. '만경봉1상점' 이라 간판 붙여진 상점이 보인다.

만경대는 커다란 수목원이기도 하다. 잘 조성된 숲과 나무 속에 산책로가 잘 놓여져 있다. 고도원 이사장님과 최동훈 팀장이 잠시 뒤를 돌아보는 사이에 한 컷 찍었다.
처음으로 ↑
  1. 나소웅 2008-07-23 12:50:12

    구경한번잘햇소 상상만해도소룸이끼져짐니다
    우리집 강아지도평양인민들보다백번잘지내는구만..?
    하루빨리 빵이아니면 자유을달나.....

  2. 최윤혜 2008-07-23 15:17:15

    아!아무나 가볼수 없는 그곳 북녁의땅 나도 아버지고향이 황해도 연백이다
    그곳에 오빠가 셋이있다고 하였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모른다
    사진으로 나마 볼수있다니 우린 언제쯤 통일 될수있을까 내대엔 가능할까?
    아냐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능해 우리가 열린마음의준비 때가되면 때가 언제일런? 꿈을가져본다

  3. 서진석 2008-07-25 21:00:42

    다녀오시느라 고생많이 하셨고 작년 산행으로 금강산을 다녀왔지만 사진으로나마 시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좀 아쉬움이 남아 있네요.언제쯤이나마 자유로이 왕래가 가능한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며....

  4. 민주영 2008-07-26 16:07:56

    4년이 지난 지금에 4년전에 이같은 행사가 같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고도원님의 아침편지를 알게된 것 역시 1주일전쯤 되지요. 아직은 쉽게 다가설 수 없지만 삶의 진정한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자꾸 생각하게 해주는 사이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것, 같은 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
    같은 모습으로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에서 과연 같음은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요? 곱씹어 생각해보렴니다.

    감사합니다.

  5. 김선희 2008-08-08 03:08:06

    부럽습니다. 고도원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 같네요. 언젠가 한 번 뵙고 싶어졌습니다.

  6. 전광호 2008-08-12 10:01:38

    서울에서 평양까지 곧장 갈수도 있다니 참 놀랍습니다.
    덕분에 말로만 듣든 평양구경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세계 구석구석 구경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사진으로 구경하는동안은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7. 정경숙 2008-08-20 14:26:39

    덕택에 구경 잘했습니다..특히 김일성 생가의 유물들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감사합니다.~~

  8. 헐랭이 2008-09-04 08:42:44

    언제 우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북에있는 동포들을 만날수 있을까?
    우리모두가 동포들을 사랑하고 북한땅도 우리땅이라는사실을 확인할까?
    빨리통일이 돼야 할텐데 정치하는 사람들의 사상뗌에 어려워지고 미국과 일본도 우리의통일을 원하지 않겠지 우리가 살아있을때 꼭통일을 시켜서 마음껏 여행을 해봤으면 좋겠다.

  9. 이상석 2009-02-08 17:33:25

    자유로이 남북을 오가는 날이 언제나 올지. 사진으로나마 평양일대를 구경하니 참 좋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질적인 풍경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서로 노력하다보면 통일 될 날이 오겠죠.

  10. 이순님 2009-02-10 17:49:38

    북한의 풍경을 잘봤습니다 고도원님도 글로만보다가 사진으로뵙게되니
    반갑습니다 너무멋지시네요 감사희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11. 정춘자 2009-11-25 15:36:42

    가슴 시리게 횡한거리 아품이 점점이
    다시 시작하기위하여 준비된 무대?
    그래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지 그 곳은 역사의 생인 손가락이다

  12. 박혜연 2010-02-26 22:35:05

    저도 평양땅에 밟아보는것이 소원이랍니다! 특히 열성적이게 설명을 하는 북측 여성안내원의 모습 제가봐도 열성적입니다요! *^^*

  13. 자운영 2011-01-17 01:42:07

    덕분에 구경한번 잘 했습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남북이 다 사이좋게 살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어쩌다가 우리민족은 이리도 가슴 아픈 역사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저희 시아버님의 고향이 신의주인데 가 보지도 못하시고 늘 가슴만 태우시다가 작년 향년 86세로 소천하셨답니다. 독자이신 아버님은 북쪽에 사촌형제들이 다들 계신다고 늘 그리워하시면서 명절때마다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아직도 생전에 계신 어르신분들을 위해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다들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14. 홍순희 2011-02-17 16:20:01

    어머니의 고향이 있는 그곳에 가고 싶어집니다 정성어린글에서 사랑을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5. 노희춘 2011-04-26 17:06:28

    사진으로나마 구경 잘 하였습니다.우리생전에 하루빨리 평화적으로 통일되어서 남북이 서로 사이좋게 오가는 날이 왔으면 아주 좋겠습니다.크지도 않은나라에서 서로 미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6. 강순자 2011-04-30 11:14:07

    안방에서 눈이 즐겁습니다 언제 통일되어 가보리까

  17. 성수철 2011-05-05 11:29:35

    평화통일의 염원을 위하여 기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8. 김지수 2011-09-03 23:54:43

    아~~~~~~

  19. 박혜연 2015-09-21 13:21:53

    사실 저의 친조부모님의 고향이 북한이신지라 언젠가 한번만이라도 평양에 꼭 가보고 싶더군요?